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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 하다.
보통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다.
1) 낭만주의
낭만적인 사람은 낯선 사람을 언뜻 본 순간부터 최단 경로를 밟아 실존에 대한 무언의 질문들에 그 사람이 포괄적 답안이 될 수도 있다는 장엄한 결론을 공언한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 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한다.
한편,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 약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시기에(즉, 주로 초기에) 그렇다.
사랑의 초기 단계에는 남에게 내보이면 절대 안 될 것 같았던 많은 비밀을 마침내 드러낼 수 있다는 순전한 안도감이 어느 정도 생긴다. ... 우리의 연인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눈감아준다.
내가??
라비는 어느 한 느낌과 결혼하여 그 느낌에 영원히 고착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특별하고 순간적인 일련의 상황들에서 운이 좋게도 그런 느낌을 공유하게 된 사람과 결혼하려는 것이다.
결혼은 타이밍.
다소 부끄럽지만 결혼의 매력은 혼자 산다는 게 얼마나 불쾌한지로 귀결된다. 이는 꼭 우리 개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독신 생활을 최대한 성가시고 우울하게 만들기로 작정을 한 듯하다.
인정
라비는 트라우마를 성장과 깊이에 이르는 주요 통로로 보고, 자신의 슬픔이 파트너의 성격 안에서 공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처음에는 커스틴이 가끔 움츠러들어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말다툼을 한 후에 극도로 냉담하고 방어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어도 라비는 벌로 개의치 않는다. 라비는 허둥지둥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도움이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하기에 얼마나 까다로운 선물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그녀의 상처 입은 면을 아주 빤하고 감상적인 방향으로 해석한다. 자신이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2) 그 후로 오래오래
낭만적 모험은 이제 지나갔다. 지금부터의 삶은 안정적이고 반복되는 리듬을 탈 테고, 한 해 한 해가 외형상 너무 비슷하여 그들은 종종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려면 멀었다. 이제부터는 이 흐름 속에 더 오래 견디면서 촘촘한 체로 흥미로운 알갱이들을 잡아내야 하는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덧붙이자면,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사랑의 아이러니를 문장으로 이렇게 잘 표현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잘 들어주는 사람은 잘 말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의 비결이다. 이는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을 말한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파트너로부터 두렵거나 충격적이거나 구역질 나는 말을 거의 듣지 않을 때가 바로 격정을 시작해야 할 순간이다. 친절해서든 사랑을 잃을까 애절하게 두려워해서든 그런 말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파트너가 달콤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의 상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징후일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우리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희망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보에 귀를 닫아버렸고 그럼으로써 그 희망이 더욱 위태로워지리라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사랑의 모든 가정들 중 아주 얄팍하리만치 불합리하고 미숙하고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서약한 사람이 우리의 감정적 실존의 중심일 뿐 아니라 -그 결과로서, 또한 대단히 이상하고 객관적으로 비상식적이고 아주 부당한 방식으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그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에는 기이하고 병적인 특권이 있다.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기대, 실망, 만족을 반복한다.
3) 아이들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매혹하고 위로해주는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더 자란 아이들이 가끔 큰 불안을 느끼며 판단을 내리듯이, 아이들은 아무 '요점'이 없고, 이것이 아이들의 요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외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에스터가 유아기라는 긴 밤 끝에 하나의 독립된 의식체로서 깨어날 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완전히 잊히겠지만, 세상이 기본적으로 편안하고 신뢰할 만한 곳이라는 느낌은 불멸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유아기의 핵심 사항들은 개별 사건으로가 아니라 감각기억으로 저장된다. 꼭 안겼던 누군가의 가슴팍, 하루 중 특정 시간에 특정한 기울기로 떨어지던 빛, 냄새들, 여러 가지 다른 비스킷, 카펫의 결, 한밤중 긴 시간 달리는 차 안에서 멀찍이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마음을 달래주는 부모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이 존재할 권리와 희망을 이어갈 이유가 있다는 근원적인 느낌으로...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는 어려운 관례다.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주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존재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키워봐서 부모님의 입장은 모른다. 해당 챕터를 아이의 입장으로 읽게 되었고, 부모님의 숨겨진 희생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보니 힘들었다.
어린애 같은 건 어린애들만이 아니다 어른들 역시 -허세의 이면에는- 장난스럽고, 어리석고, 엉뚱하고, 상처를 찰 받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겁에 질리고, 가엾고, 위로와 용서를 찾는 면이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애 같은 면에 조금 더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면 더욱 멋질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겸손하게 부인하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아무리 낮춰 말해도 아이가 생기면 -적어도 처음에는- 완벽함을 맹렬히 추구한다.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완벽함의 특별한 표본을 창조하려 하는 것이다. 평범함은 통계상 정상임에도 결코 최초의 목표가 되지 못한다. 그 결과 아이를 어른으로 키우는 데 너무 막대한 희생을 치른다.
자위의 판타지에서 무작위로 만난 낯선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낮은 순위의 모티프가 된다는 사실은 낭만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논리를 획득 할 수 없다.그러나 실제로는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바로잡고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랑과 섹스의 냉정한 분리, 바로 그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이용하면 분노, 감정적 취약성, 상대방의 욕구를 신경 써야 할 의무를 우회할 수 있다. 우리는 비난이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선까지 특이하고 이기적으로 굴 수 있다. 모든 감정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이해되기를 바라는 일말의 소망도 없고 따라서 잘못 이해될 위험도 없으며 그 결과 괴로워하거나 실망하게 될 위험도 전혀 없다. 마침내 삶의 소모적이고 거치적거리는 나머지 부분을 침대로 가져갈 필요 없이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정확히 똑같게 계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 당사자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더 저주받았으며 파트너는 이를 인정하거나 속죄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언제라도 진지한 경쟁에 돌입할 수 있다. 자신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의 결론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4) 외도
그들은 깊은 포옹으로, 더 이상 서로에게 어떤 의도도 품지 않는 두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순수한 애정을 표현한다. ... 두 사람 사이에 놓인 하나의 대양과 하나의 대륙을 생각하면서 그는 가까워지고 싶은 모든 열망을 편하게 내려놓는다. 두 사람 모두 친밀해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마음이 아플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어떤 결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들은 결코 분개할 필요가 없으며, 계속해서 서로를 좋은 마음으로 생각할 것이다. 미래가 없는 사람들만이 그럴 수 있듯이.
그녀는 오랫동안 하찮건 심각하건 간에 라비의 모든 소식이 맨 처음 거쳐가는 기항지였다. 따라서 대단히 중요하지만 습관적인 공개의 원칙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정보를 자신만 알고 있으려니 참으로 이상하다. ... 이 통찰력 있고 호기심 많고 재미있고 관찰력 뛰어난 삶의 공동 탐험자보다 그런 주제들을 함께 숙고하기에 더 적합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던 파트너에게, 외도 사실만은 공유할 수 없고 그 상황이 어색한 주인공의 태도라니..
그녀의 관대함이 자신의 부족함을 부각시키는 듯해서 나날이 더 견딜 수 없다. 그의 태도는 나빠진다. 아이들 앞에서 아내에게 핀잔을 준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속옷을 정리할 때 일부러 꾸물거린다. 차라리 아내도 좀 지독하게 받아쳤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에 대한 그녀의 평가가 그 자신의 자긍심과 나란히 정렬될 테니까.
결혼: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5) 낭만주의를 넘어서
이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주는 것뿐이다.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의 외로운 내면을 이해하고, 나는 왜 하필 그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를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적을 미워하고, 상당히 특화된 성적 시나리오를 함께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모든 사람(또는 예정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우리의 파트너는 완벽할 수 없고, 우리는 사랑하고 이해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Love is still the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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